문화 · 여성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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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시인 약력 -1954년 광주 출생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사평역에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사평역에서』,『전장포 아리랑』,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살』 등 -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장편동화 『아기 참새 찌구』 등 -1992년 신동엽 창작기금과 1996년 동서문학상 수상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 -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 강의 중 -----------------------------------< 감상 > 사평역이란 가상의 역을 놓고 시인은 민중의 애환을 담아 그린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눈은 그 민중의 역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할 것이다. 톱밥난로를 통한 고단함과 피곤함을 위안하는 모습이다.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의 풍경을 담아 세상의 이치를 말하는 시인은 살아가는 모든 삶은 이런 것인가 하는 회유 아닌 회유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립다거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며 한 줌의 톱밥을 던져주는 인간적인 면이 나타나기도 하는 이 대합실 속에 있는 사람들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것이라 느끼는 것이다. 삶의 무게나 고통에 대한 말들은 정작 뱉어내지 못한다는 것으로 시인은 침묵을 강요한다. 오랜 가난하고 고단함을 청색(시퍼런) 같은 차가운 손바닥을 난로 불빛에 적셔둔다는 말은 쬐인다 라는 말과 바꿔말해도 될 듯하다.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자정이 넘으면 다시 뼈아픈 발자국이 찍힌다는 다시 말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는 시인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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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화단에서아파트 화단에 앉아 꽃씨를 심는다 다섯 살배기 흙손가락에서 피어나는 봄흙의 귓불에선 아직도 말간 배냄새가 난다 나도 씨였죠? 이 씨도 쑥쑥 자랄 거죠? 한껏 치켜올린 입술이 나팔꽃처럼 둥글게 피어나고 꽃씨를 품은 봄흙을 다독이는 살빛 떡잎이 둘 타클라마칸 고비의 황사를 견디며 지구의 저 저 저 모퉁이를 견디며 씨에서 잎으로 꽃으로 몸 바꾸며 나이테처럼 쑥쑥 높아지는 키의 눈금들이 해님에게 가는 계단이래! 꽃씨를 묻은 플라스틱 화분을 안고 계단을 오르는 위태로운 흙물 엉덩이를 보며 목숨을 피우려는 모든 것들은 저리 온몸으로 뒤뚱이며 오르는 것이구나 바람에 휘청, 넘어진 피와 멍이 너의 꽃이고 잎이었구나 저 계단에서 잠시 붙잡고 선 난간이 너의 뿌리였구나 *정끝별 시인 약력 -1964년 11월 28일 전남 나주 출생.-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1988년 ≪문학사상≫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당선.-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 당선.-현재,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시론집 <패러디 시학>, -평론집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시선평론집 <행복>, -산문집 <여운> 등이 있음. --------------------------------<감상> 씨와 아이의 쌍관관계를 놓고 이야기 형식인 시 한 편이 참 따뜻하게 들려오는 노래 한 자락 같은 이 시는 발상이 참신하고 견고하게 들려온다. 목숨을 부지하려는 움켜진 손아귀는 피와 멍이 들어 피어오르는 꽃이라는 것을 발견한 시인의 눈은 참으로 진지하다. 요즘 시는 기교와 말장난으로 눈속임을 하는 시들이 많은 반면 이 시인은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라 할 수 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장치를 깔끔하게 한 시를 내놓으며 시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라고 가르쳐주는 것 같지 않는가 말이다. “목숨을 피우려는 모든 것들은 저리 온몸으로 뒤뚱이며 오르는 것이구나” 말하는 시인의 눈은 잔광 속에서도 꽃이 피지 않겠는가? 끙끙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번잡스럽지 않는 조용한 어조의 진정성이 숨어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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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1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퍼 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쌀밥 같은 토끼풀꽃,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어둠을 끌어다 죽이며그을린 이마 훤하게꽃등도 달아 준다.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일어서서 껄껄 웃으며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고갯짓을 바라보며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퍼 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김용택 시인 약력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순창 농림고 졸업. 1982년 창작과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등을 발표 시집『섬진강』『맑은 날』『누이야 날이 저문다』『꽃산 가는 길』『그리운 꽃편지』『그대 거침없는 사랑』『강 같은 세월』『그 여자네 집』 산문집『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1994)『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1997)『섬진강 이야기1·2』(1999)『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2000) 동시집『콩, 너는 죽었다』 『학교야 공 차자』『오줌으로 만든 무지개 다리』 1986년『맑은 날』로 제6회 김수영 문학상, 1997년 제12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감상> 섬진강 시인이라 불리는 김용택 시인의 시 한 편을 들고 나왔다. 내가 자란 섬진강물 흐르는 자연의 경관을 들고 나온 시가 어머니 품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라도 하면 섬진강을 떠올리듯이 영산강 무등산 지리산 주변을 흐르는 이 섬진강이야말로 민중의 굽힐 줄 모르는 생명력을 발상해 냈다. 건강하고 살아 숨 쉬는 국토애를 발판삼아 영산강을 맞장구 쳐 끌어낸 이 사유의 의인화 시키는 시 한 편이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흐르는 것 같은 이 풍경이 민중의 깊이를 담아내는 시라 할 수가 있다. 시인의 풀 한 포기 꽃 한 닢마다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음을 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 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마지막 연에 단정을 지어버린다. 시인은 그렇게 당당하다. 지금 처해 있는 우리나라가 썩어빠지고 지랄을 떤다고 해도 민중의 힘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단호하게 거절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옹 한다고 어디 홀리는 민중이겠는가?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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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 기대어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날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송수권(宋秀權)l시인의 약력 1940. 전남 고흥 출생, 고흥중, 순천사범, 서라벌예대 졸1975. 山門에 기대어 등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제1시집 산문에 기대어(문학사상사), 제2시집 꿈꾸는 섬(문학과 지성), 제3시집 아도(창작과비평사), 제12시집 장편서사시집 달궁아리랑(종려나무,2010), 13시집 남도의 밤식탁(작가,2012), 제14시집 빨치산(고요아침,2012), 제15시집 퉁 (서정시학,2013), 제16시집 「사구시의 노래」(고요아침,2013), 제17시집「허공에 거적을 펴다」(지혜,2014) 등. 시선집 시골길 또는 술통(종려나무,2007) 및 기타 저서 50여권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영랑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만해님시인상(2011), 김삿갓문학상(2012), 구상문학상(2013) 등현재, 한국풍류문화연구소장, 순천대 명예교수 ---------------------------------------------<감상> 이 시는 세상을 떠난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그린 그림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이 시의 핵심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 이라 할 수가 있다. 죽은 누이의 떠도는 영혼을 읽을 수가 있는데 살아생전에 누의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그린 작품이겠다. 시인은 쓰레기통 시인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응모당시 원고지가 없어 갱지에 써서 투고한 까닭에 시인 지망생이 원고지 쓸 줄도 모른다고 판단한 편집위원이 휴지통에 쳐박았단다. 게다가 주소도 여관방이었으니 더욱 그러하지 않았겠는가. 우연히 《문학사상》 주간이던 이아령 이화여대 문리대 교수가 우연히 휴지통 속 수북한 원고뭉치를 발견, 송수권 시인이 투고했던 <산문에 기대어> 외 4편의 원고를 찾아냈다고 한다. 당선은 되었는데 당선자를 찾을 수가 없어 무려 1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 시가 바로 “그 산문에 기대”이다. 죽은 자에게 질문을 던진 이 시는 화자의 간절하고 애절한 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뭉클하다. 실제 화자의 동생이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와 자살한 동생을 누이로 대체시켜 누이의 눈썹이 가을 산 그림자에 묻혀 떠돌고 있는 이미지로 부각시켜 놓은 것이라 한다. 나도 이 시의 이미지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인터넷 이곳저곳을 찾아 일부는 글자 토시 하나 틀리지 않도록 옮겼다는 것을 인정한다. 일부 나의 감상이 아님을 밝힌다. 그러나 이 시 만큼은 쓰레기통에서 나온 시라서인지 더욱 특별하다. 나는 이 시를 필사하면서부터 시를 배우게 된 특별한 시라 할 수 있다. 좋은 시 한 편 소개한다.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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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간다달팽이 개수대를 기어 오른다제 살 곳에 살지 못하는 것이 저 달팽이 뿐이랴만언제 이 사막을 건널 것인가연유를 묻지 않아도 여기, 지금 이곳응, 나야 하고 말 걸어 볼 사람 하나 없는 건기의 도시때때로 절박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직도그곳엔 바람을 되새김질하는 감자꽃과해질녘 주인이 전지한 넝쿨에 참외꽃 피겠지만겹겹의 바람을 쟁이는 치마상추 잎 그늘에깃들고 싶었을 달팽이를 안다 오늘도 도시는 번화하고 바람이 불었다모두들 촛불 켜들고 광장으로 나갈 때에도달팽이 건기의 도시를 횡단하며 자정 가깝도록 서걱서걱 초인종을 눌렀다, 그때마다내 몸에서는 한 움큼씩 초록물이 빠져나가지만사막에서도 한 평생 살아내는 몇 종의 동물과 식물처럼목메어 기다 가다 거기, 어디쯤스쳐갔을 상추 잎에 스민 바람과 그늘 찾아 *최광임 시인 약력전북 부안 변산 출생. 200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도요새 요리』. 계간《시와 경계》부주간, 창신대 겸임교수. ----------------------------------------<감상> 이 시에서는 집 없는 달팽인지 아니면 집이 있는 달팽인지 확연하다. 초인종을 누른다는 것은 분명 집은 있다. 그런데 이놈의 집이 전세인지, 월세인지, 알 수가 없다. 그 말이 그 말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 한 편의 시로 서민들의 주거난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최근 뉴스에 나오는 말에 의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한다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는 서민들이나 집주인들도 차라리 전세보다는 매매로 집을 내 놓는 이 시점에 자정 가깝도록 종일 힘들어 일하다 피곤한 몸을 끌고 왔을 저 시 속에 달팽이는 기다 가다 거기, 어디쯤 내 편히 쉴 곳이 있었으랴. 그저 스쳐가는 곳, 발 뻗으면 집이요, 일어나면 다시 건기에 몸을 실어야하는 생이 아닌가. 시인의 낮은 곳을 바라보는 눈에 내 눈도 숙연해진다. 어느 곳엔 웃음이 있다지만 저 달팽이는 때때로 절박을 긴박처럼 몸을 뒹굴었을 것을 생각한다. 이 몸도 오늘 잠 못 이루고 뒹굴고 있다.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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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그림에 쓰다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은 다 꽃길이라 믿었던 시절 득음한 꽃들의 아우성에 나도 한 때 꽃을 사모하였다 꽃을 사모하니 저절로 날개가 돋아 꽃 안의 일도 꽃 밖의 일도 두근거리는 중심이 되었다 꽃술과 교감했으므로 날개 접고 앉은 자리가 모두 꽃자리였다 꽃길을 날아다녔으나 꽃술을 품었다고 흉금에 다 아름다운 분粉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겹눈을 가지고도 읽지 못한 꽃독에 날개를 다치고 먼 남쪽 다산에 와서 앉는다 낮달이 다붓하게 따라온다 주전자에는 찻물이 끓고 *꽃 밖에서 훨훨 날아다니고 꽃술을 사모하여 맴돌지는 말아라* 오래 전 날개를 다치고 이곳에 먼저 와서 앉았던 사람이 더운 붓끝으로 허공에 쓰고 있다 *정약용의 시 “題?蝶圖” 에서 인용 *허영숙 시인의 약력2006년 《시안》신인상 당선. <시마을> 동인. 시집『바코드』. 공저시집『느티나무의 엽서를 받다』등. ------------------------------------------------- <감상> 나비의 형상이나 안개의 형상을 대조해보면 이런 글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진의 <산속 집에서 우연히 짓다>라는 한시인데 마지막 글귀에 “밤 지새운 묵은 안개 깊은 숲에 남았다가 낮 바람 불어오자 부슬부슬 비 뿌리네” 하는 글귀와 허영숙 시인의 마지막 행 두 줄 “오래 전 날개를 다치고 이곳에 먼저 와서 앉았던 사람이 더운 붓끝으로 허공에 쓰고 있다”가 꼭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상상에 노를 저었을 때 보는 사람마다의 관점이 다르겠지만 유추해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시인의 심상이 본래 따뜻해서인지 글에서 녹아내리는 꽃도 그윽한 운치와 서늘한 향기마저 난다. 당시 다산의 시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대변이랄까. 누구의 의견을 빌어 진부한 것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나 익숙한 것을 새롭게 만나도록 하는 것이나 이런 것들이 시인의 창조적 정신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마술이라는 것이다. 참신하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결코 추하지 않는 나비와 꽃을 팽팽한 긴장 속으로 몰아가는 힘이 있어 보인다.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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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서 온 편지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냐 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 <감상> 중장이 늘어진 사설시조다. 구수하고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혼자 사는 어머니가 수녀가 된 딸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이 시조는 절절하면서도 애틋한 사연이다. 질박한 시조의 묘미를 살린 이 풍경이야말로 백미중에 백미라 할 것이다. 달구똥 마냥 복사꽃 활짝 핀 저 풍경을 혼자 보기가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세상의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 딸 시집 잘가 봄볕처럼 화사한 대문 입구에서 자식들 거느리고 부모 찾아오는 그 모습을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쓸쓸한 그늘을 적막처럼 안고 혼자 소주 한 잔으로 달래는 어머니 손 꼭 잡아드리고 싶다.<-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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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의 죽음노점상 여자가 와르르 얼음포대를 쏟는다갈치 고등어 상자에 수북한 얼음의 각이 날카롭다 아가미가 싱싱한 얼음들, 하지만 파장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사라지는 얼음의 몸, 한낮의 열기에 조금씩 각이 뭉툭해진다 질척해진 물의 눈동자들 길바닥으로 쏟아지는 땡볕에 고등어 눈동자도 함께 풀린다 얼음은 얼음끼리 뭉쳐야 사는 법 얼음공장에서 냉기로 꽁꽁 다진 물의 결심이 풀리는 시간, 한 몸으로 들러붙자는 약속마저 몽롱하다 서서히 조직이 와해되고 체념이 늘어난다핏물처럼 고이는 물의 사체들 달려드는 파리 떼에 모기향이 향불처럼 타오르고 노점상은 파리채를 휘두른다 떨이로 남은 고등어, 갈치 곁에 누워버린 비리고 탁한 물 이곳에서 살아나간 얼음은 아직 없었다 노점상은 죽은 생선에 자꾸 죽은 물을 끼얹는다 * 마경덕 시인의 약력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신발론 』『글러브 중독자 』등 ----------------------------------------- <감상> 우리는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을 대부분 얼음 풀리듯 녹아내리는 사실들을 많이 보고 겪어간다. 말하자면 작심삼일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마경덕 시인의 「얼음의 죽음」에서 느끼듯이 방해를 하는 자와 방해를 받는 자의 치열한 삶의 세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음의 희생으로 다른 한쪽이 살아갈 수 있는 죽음을 선택한 시인의 매섭고도 따뜻한 시 한 편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인위적 배타적인 소유욕이 가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리라고 억압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시를 놓고 우리는 침잠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 번 걸린 그물에 누구도 살아갈 수가 없는 현시대를 비판하는 글이라 여긴다. 서민들의 아픔을 이렇게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시인이 몇이나 있나 싶을 정도로 냉철한 시를 내놓는 시인의 눈은 정말 예사롭지 않다.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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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리하늘 이리 맑은 날은 무슨 소식이 올 것 같아강둑의 젖은 억새도 머리 낭창 세우고햇살에 씻긴 강물은 가르마가 하얗다 바람결에 부쳐온 난독의 문장 한 줄먼 그대 외진 마음 다 읽을 수 없어서 수척한 가을 전언만 홀로 받아 적는다 은빛 날개를 접고 수면을 오래 보는중백로 긴 목덜미가 전생처럼 서러운 날 여기에 없는 당신을 가만 불러 보듬는다 *강정숙 시인 약력 2002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수상. 2009년 수주문학상 수상시집 『환한 봄날의 장례식』(2006년 우수도서 선정)시조집『천개의 귀』 ----------------------------------<감상> 시인의 언어는 누군가 꼭 기다릴 것만 같은 강둑(천변) 길 저너머에 대한 환상 같은 기대감이라 한다. 그 길은 슬프면서도 아름다움에 닿아 있다는 말을 아낌없이 던지는 시인은 무료한 날엔 젖은 억새며 은빛으로 여울지는 물살의 소슬한 풍경 너머에 서 있을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골똘히 걷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워하는 자체만으로도 삶의 영위성을 가져다 준다는 강정숙 시인의 가락과 음률이 생동하는 시조 한 편을 읽는다. 이 시조 한 편은 마음의 상처 같은 그리움을 치유하고 근원적인 믿음을 추구하려는, 섬세하고 이성적인 소통을 이루고자 여겨지는 시조라 본다. 우리는 새로운 감수성과 가치관이 나올 때 감탄사를 내뱉게 되는데 바로 별리를 바라보는 우리가 그렇지 않는가.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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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고동바닷가 돌 틈새 갯고동 한 마리가 등짐이 무겁다.매일 새벽별을 보며 출근하는 남편의 등짝 같다썰물과 밀물이 드나들 때마다 어두운 바위틈에달라붙어 소통이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내가 다가가 툭, 치자 비좁은 돌 틈새로 몸을 움츠리며납작 엎드려 낮은 자세로 바라본다.남편도 그랬을 것이다. 조직과 경쟁 속에서 수 십 번의 일탈을 꿈꾸며 더러는 납작 엎드려 숨죽였을 것이다유속의 속도에 따라 흘러왔을 시간들이등짝 속에서 간기에 절여가며 부르텄을 것이다소통과 부재의 사이에서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나는 한 번도 그의 등짝을 쓰다듬어 주지 못했다.아~ 하고 내가 느꼈을 때쉰 네 줄기의 샛강들이 비로소 물길을 연다. -------------------------------------<감상> 남편의 하는 일에 매일 기도하는 여자를 보았다. 성공도 기쁨도 가족과 함께 나누기를 바라는 아내의 마음이나, 성취하는 남편이 되게 하는 기도나, 아내가 아들이 남편을 아버지를 존경하게 해 달라는 문구들은 밖에서 일하는 남편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가 바로 그런 기도라고 생각을 한다. 비로소 샛강의 물길을 연다는 것은 이제야 비로소 남편의 아픔들을 다독거릴 줄 알겠다로 읽히는 것으로 읽힌다. 말하자면 건강검진 같은 한 편의 시로 모든 남편들의 아픔을 말하는 것이지만 모든 아내가 남편에게 이 시와 같이 지금껏 어깨 한 번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하지는 않았나 돌이켜볼 일이다. 비가 온다! 그래도 아내는 남편의 퇴근길에 등불을 밝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서문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