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화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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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여성

봄의 화단에서

정끝별 시인

  • 기자
  • 등록 2016.01.08 10:41
  • 조회수 1,249


아파트 화단에 앉아 꽃씨를 심는다
다섯 살배기 흙손가락에서 피어나는 봄흙의
귓불에선 아직도 말간 배냄새가 난다
나도 씨였죠?
이 씨도 쑥쑥 자랄 거죠?
한껏 치켜올린 입술이 나팔꽃처럼 둥글게 피어나고
꽃씨를 품은 봄흙을
다독이는 살빛 떡잎이 둘

타클라마칸 고비의 황사를 견디며
지구의 저 저 저 모퉁이를 견디며
씨에서 잎으로 꽃으로 몸 바꾸며
나이테처럼
쑥쑥 높아지는 키의 눈금들이
해님에게 가는 계단이래!
꽃씨를 묻은 플라스틱 화분을 안고
계단을 오르는 위태로운 흙물 엉덩이를 보며
목숨을 피우려는 모든 것들은
저리 온몸으로 뒤뚱이며 오르는 것이구나

바람에 휘청,
넘어진 피와 멍이 너의 꽃이고 잎이었구나
저 계단에서
잠시 붙잡고 선 난간이 너의 뿌리였구나

 

*정끝별 시인 약력
 
-1964년 11월 28일 전남 나주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88년 ≪문학사상≫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당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 당선.
-현재,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시론집 <패러디 시학>,
-평론집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시선평론집 <행복>,
-산문집 <여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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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씨와 아이의 쌍관관계를 놓고 이야기 형식인 시 한 편이 참 따뜻하게 들려오는 노래 한 자락 같은 이 시는 발상이 참신하고 견고하게 들려온다. 목숨을 부지하려는 움켜진 손아귀는 피와 멍이 들어 피어오르는 꽃이라는 것을 발견한 시인의 눈은 참으로 진지하다.

  요즘 시는 기교와 말장난으로 눈속임을 하는 시들이 많은 반면 이 시인은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라 할 수 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장치를 깔끔하게 한 시를 내놓으며 시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라고 가르쳐주는 것 같지 않는가 말이다.

  “목숨을 피우려는 모든 것들은 저리 온몸으로 뒤뚱이며 오르는 것이구나” 말하는 시인의 눈은 잔광 속에서도 꽃이 피지 않겠는가? 끙끙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번잡스럽지 않는 조용한 어조의 진정성이 숨어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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