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에서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 · 여성

사평역에서

곽재구 시인

  • 기자
  • 등록 2016.01.10 08:51
  • 조회수 1,324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시인 약력

-1954년 광주 출생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사평역에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사평역에서』,『전장포 아리랑』,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살』 등
-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장편동화 『아기 참새 찌구』 등
-1992년 신동엽 창작기금과 1996년 동서문학상 수상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
-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 강의 중

-----------------------------------
< 감상 >
  사평역이란 가상의 역을 놓고 시인은 민중의 애환을 담아 그린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눈은 그 민중의 역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할 것이다. 톱밥난로를 통한 고단함과 피곤함을 위안하는 모습이다.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의 풍경을 담아 세상의 이치를 말하는 시인은 살아가는 모든 삶은 이런 것인가 하는 회유 아닌 회유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립다거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며 한 줌의 톱밥을 던져주는 인간적인 면이 나타나기도 하는 이 대합실 속에 있는 사람들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것이라 느끼는 것이다. 

  삶의 무게나 고통에 대한 말들은 정작 뱉어내지 못한다는 것으로 시인은 침묵을 강요한다. 오랜 가난하고 고단함을 청색(시퍼런) 같은 차가운 손바닥을 난로 불빛에 적셔둔다는 말은 쬐인다 라는 말과 바꿔말해도 될 듯하다.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자정이 넘으면 다시 뼈아픈 발자국이 찍힌다는 다시 말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는 시인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서문기 시인->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