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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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여성

달팽이 간다

최광임 시인

  • 기자
  • 등록 2015.12.24 03:54
  • 조회수 1,138

 


달팽이 개수대를 기어 오른다
제 살 곳에 살지 못하는 것이 저 달팽이 뿐이랴만
언제 이 사막을 건널 것인가
연유를 묻지 않아도 여기, 지금 이곳
응, 나야 하고 말 걸어 볼 사람 하나 없는 건기의 도시
때때로 절박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직도
그곳엔 바람을 되새김질하는 감자꽃과
해질녘 주인이 전지한 넝쿨에 참외꽃 피겠지만
겹겹의 바람을 쟁이는 치마상추 잎 그늘에
깃들고 싶었을 달팽이를 안다
오늘도 도시는 번화하고 바람이 불었다
모두들 촛불 켜들고 광장으로 나갈 때에도
달팽이 건기의 도시를 횡단하며
자정 가깝도록 서걱서걱 초인종을 눌렀다, 그때마다
내 몸에서는 한 움큼씩 초록물이 빠져나가지만
사막에서도 한 평생 살아내는 몇 종의 동물과 식물처럼
목메어 기다 가다 거기, 어디쯤
스쳐갔을 상추 잎에 스민 바람과 그늘 찾아

 

*최광임 시인 약력
전북 부안 변산 출생.
200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도요새 요리』.
계간《시와 경계》부주간, 창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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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이 시에서는 집 없는 달팽인지 아니면 집이 있는 달팽인지 확연하다. 초인종을 누른다는 것은 분명 집은 있다. 그런데 이놈의 집이 전세인지, 월세인지, 알 수가 없다. 그 말이 그 말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 한 편의 시로 서민들의 주거난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최근 뉴스에 나오는 말에 의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한다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는 서민들이나 집주인들도 차라리 전세보다는 매매로 집을 내 놓는 이 시점에 자정 가깝도록 종일 힘들어 일하다 피곤한 몸을 끌고 왔을 저 시 속에 달팽이는 기다 가다 거기, 어디쯤 내 편히 쉴 곳이 있었으랴.

  그저 스쳐가는 곳, 발 뻗으면 집이요, 일어나면 다시 건기에 몸을 실어야하는 생이 아닌가. 시인의 낮은 곳을 바라보는 눈에 내 눈도 숙연해진다. 어느 곳엔 웃음이 있다지만 저 달팽이는 때때로 절박을 긴박처럼 몸을 뒹굴었을 것을 생각한다. 이 몸도 오늘 잠 못 이루고 뒹굴고 있다.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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