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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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여성

야생초 편지를 읽고

'사람이 생긴 그대로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가장 아끼는 책 중 하나가 바로 이'야생초 편지'이다. 십 여 년 동안 손때 묻혀 가며 읽게 되는 애착이 가는 책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사회, 수다가 잘 통하는 것 같지만 돌아서면 허한 공허감을 느끼고 잘 나가는 것 같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풍족하게 사는 것 같지만 뭔가 더 갈급해지는 다급함, 풍요속의 빈곤이 빈번히 찾아오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야생초 편지'를 읽곤 한다. 정신적 청량감을 느끼는 이 책을 읽다보면 혼탁하고 혼란스런 마음이 산야초 앞에 놓여 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단순히 머리를 식히기 위한 수단이 아닌 자연으로의 귀환을 서두르는 메뚜기처럼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확 트인 내 맘을 볼 수 있다.

  땅개비처럼 푸른 잎에 매달려 산들거리며 바람에 몸을 맡기는 한량한 한 철 보내다 소리 없이 사위어 가는 작은 의미가 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저자는 이 책 서문에 ' 감옥 마당에서 무참히 뽑혀 나가는 야생초를 보며 나의 처지가 그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밟아도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야생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닮고자 하였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잡초'이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무진장한 보물을 보며 하느님께서 내게 부여하신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신뢰하게 되었다고' 씌어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언급했듯이 이 책 내용 전반은 야생초에 대한 관찰과 그 특징을 기술하며, 감옥 속에서 죄수 아닌 죄수로 살아가면서 협소한 공간에서도 작은 생명체의 살아가는 것들에게서 그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신을 발견해 나간다.

  책을 읽다 보면 보잘 것 없고 한 계절 지나면 없어질 풀들이지만 작으나마 생명의 소중함과 사유를 통해 나 자신이 깨어나고 작으나마 잡초 하찮은 잡초에 삶에 투영해 보는 저자의 진솔하고 내밀한 깊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은 일상이 삶의 투쟁이자, 경쟁과 팽팽한 긴장감에 살아가고 스트레스가 만연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웰빙이나 힐링이 유행하는 것은 어쩌면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는 일차적으로 욕구 외에 정신적 치유나 도피성이 더 절실한 건지도 모를 것이다.

  저자는 서울농대를 졸업, 뉴욕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2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서른이던1985년부터 1998년 마흔네 살이 될 때까지 132개월 동안을 감옥에서 보냈다.

  후에 국가기관의 조작극으로 밝혀졌지만 그는 황금 같은 시기를 감옥에서 보낸 후 세상 밖으로 나왔다.

  책은 누르스름한 재활용지로 만들어 졌고, 그 속에 직접 스케치하고 그린 야생초가 사실적으로 들어가 있고 세심한 관찰을 통해 삶을 투영해 나갔다.

  때론 풀씨를 뿌려서 풀로 김치를 절여 풀 김치를 먹는 걸 보고 죄수사이에 휘둥그레지는 눈총도 받았겠지만, 감옥에서 그토록 삶에 대한 진지한 눈이 깨이고 귀가 열려서 소중하게 씌어진, 수 십 가지 잡초를 통해 얻어진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삶에 성찰이 진솔하게 담긴 이귀한 책이 내게 전달됐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바삐 걸어온 길, 잠시 멈춰서 조용한 공간에 홀로 앉아 책과 내가 조용히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는것도좋을듯다.                                                                     

-야생초편지, 황대권, 도솔, 2004-

<윤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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