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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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여성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이지상, 중앙북스, 2007

                                                                           가을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간편한 짐을 꾸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바람 한 점에도 무담시 외롭다 하고 술을 찾게 된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산더미처럼 쌓인 인간에게는 단 열매의 포만감에 비해 가을은 쓸쓸함의 극치요.   문득 삶을 뒤돌아보게 되는 가을 문턱에 같이 읽어볼 만한 여행에 관한 책 한권 소개한다. 

  이 책은 20여 년 간의 세계여행을 통해 보고 느낀 저자의 체험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사유와 철학이 담긴 이 책을 읽고 세계관이 확장된 계기가 되었다.

  가슴 속 분화구처럼 솟아나는 여행에 대한 필요성을 갖고 나선 여행길,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 여행자로 본 여행지, 현지인으로 본 여행자의 부러움 등등 저자는 다각적인 형태로 폭넓은 경험적 시야로 글을 써 내려갔다.

  결코 읽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사유의 늪에 들어서는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은 결코 즐거움만으로 시작하고 허황된 꿈 만일 수 없는 것은 여행은 걷는 만큼 돌아와서도 그 시간만큼 후유증과 무기력증을 앓게 된단다.  단순히 패키지여행이 아닌, 가난한 여행을 통해 오감으로 느낀 바를 알차고 짜임새 있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여행을 꿈꾸고 여행 작가가 되고픈 이들에게도 좋은 조언과 방향제시를 아끼지 않는다. 인생이 일순간 무엇을 이룰 수 없듯이,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사업이든 세상의 모든 일은 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공하고 싶고 실현하고 싶을수록 천천히 가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장기적인 여행을 할 때 숙지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한 번 그 길을 선택했다면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다.  여행의 자유와, 현실의 안주( 직장이나 돈) 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지 말고 한 마리만 잡아도 어딘가, 란 저자의 달콤한 유혹도 빼놓지 않는다.

여행으로 소모된 금전적인 것은 달리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적게 먹고 적게 갖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여행도 우리 인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관계로 우리 삶의 패턴을 이해하면 그 노선을 따라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그림, 음악, 연애, 결혼생활,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첨엔 짜릿했던 것도 시간이 차츰 지남에 따라 느슨해지고 짜릿한 기쁨은 줄어든다. 여행을 짜릿하고 즐겁게 하고 싶다면 일상에서 최대한 열심히 스트레스가 팍팍 쌓여서 저절로 여행이 그리워 도록 최선을 다해 일상에 임하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여행은 단순히 걷고 먹고 즐기고 휴식이 아니다. 하나의 자기 재창조요 충전의 기회인 것이다. 최근 내 삶에도 절실히 여행을 필요로 하게 된 이유는, 간혹 나에게도 정체성의 혼돈이 올 때면 불현듯 떠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유야 뭐든 간에 막연히 벗어나고 싶다든지, 삶이 변하고 싶다든지, 지루한 삶에서 현실탈피랄지.

  독자인 나는, 긴 시간동안 티벳을 꿈꾸고,  젊을 땐 호주에 대한 환상을 꿈꿨지만 아직 밟아보지 못한 그리움으로 남겨두고 있기에 여행은 나에게 그리움이자 목표지향점 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내린 결말이 의아했던 것 중 하나가 만남에서 굳이 전화번호나 연락처를 주고받지 말자는 것이다. 정 많은 사람으로 살기엔 너무나 냉혹한 인간이 아닌가 하겠지만 한 가지 숙지할 것이 있다면, 이별은 차후 아름다운 만남의 기약이기도 하다. 이별을 통해 묵언의 약속이 내재된 채 서로 다른 길로 각자 떠나는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또 만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 때 더욱 성숙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되어 있을 그대를 기대하며 말이다.

이 얼마나 멋진 격언인가,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각자의 시간과 여건에 맞게 짐을 꾸려 이 멋진 가을 홀로이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으리라.   직립보행의 인간으로서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많이 걷고 넓게 밟고 싶다. 이 넓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다 눈에 넣고, 발 닿는 곳이라면 오지 끝이라도 발자국을 남기고 싶고 손 닿는 곳이라면 촉수의 감각을 다 느끼고 싶다.

  여행이 그립다.

이 가을 문턱에 손잡고 갈 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 윤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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