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립운동가 헐버트(訖法)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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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소리

7월의 독립운동가 헐버트(訖法)선생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대한의 독립을 세계에 역설한 파란 눈의 후원자 헐버트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버몬트주(州) 뉴헤이번에서 출생하였으며, 1884년에 다트먼트대학을 졸업하였다. 그 해 유니언신학교에 들어갔다가 1886년(조선 고종 23) 소학교 교사로 초청을 받고 D.A.벙커 등과 함께 내한(來韓),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외국어를 가르쳤다.

1905년 을사조약 후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장하여,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에 돌아가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06년 다시 내한, 《한국평론 The Korea Review》을 통해 일본의 야심과 야만적 탄압행위를 폭로하는 한편, 이듬해 고종에게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도록 건의했다.

그는 한국 대표보다 먼저 헤이그에 도착, 《회의시보 Courier de la Conference》에 한국 대표단의 호소문을 싣게 하는 등 한국의 국권 회복운동에 적극 협력하였다.

190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정착하면서 한국에 관한 글을 썼고, 19년 3 ·1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서재필(徐載弼)이 주관하는 잡지에 발표했다.

대한민국 수립 후 1949년 국빈으로 초대를 받고 내한하였으나, 병사하여 양화진(楊花津)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저서에 《한국사 The History of Korea》(2권) 《대동기년(大東紀年)》(5권) 《대한제국 멸망사 The Passing of Korea》 등이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5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순천보훈지청 = 허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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