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6?25전쟁영웅 월튼 워커 미 제8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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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소리

12월의 6?25전쟁영웅 월튼 워커 미 제8군 사령관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월튼 워커 미 제8군 사령관을 2012년 12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월튼 워커는 1912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7월 7일, 일본 동경에서 출발하여 대전에 도착해 13일, 정식으로 미 제8군 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워커 중장은 낙동강 전투에서 고군분투하는 휘하 지휘관에게 더 이상 증원군도 없고, 더 이상 후퇴할 곳도 없다고 지시했다.

한국 장병들에게는,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한편 미국 장병들에게도, “우리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설 곳도 없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 낙동강 방어선은 무조건 지켜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는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워커 장군의 이 말은 ”지키느냐 아니면 죽느냐(stand or die)"라는 명언으로 남겨졌으며, 장군의 이 굳은 의지는 결국 증원병도 없는 상태에서 낙동강 전선 일명 ‘워커 라인’을 성공적으로 사수하여 6?25전쟁의 전세를 만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50년 12월 23일, 워커 중장은 중공군의 위협을 막고 있는 서부전선의 영국군 전선을 시찰하게 되었다. 마침 장군의 휘하 군대에 복무하고 있던 외아들 샘 워커(Sam S. Walker, 1925년생) 대위를 표창하는 계기가 발생하여 방문하는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서거했다.

서울의 워커힐 호텔은 워커 중장의 사고 지점이며,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워커힐 본관 정문 산자락에 세워진 비문에는, “오늘 우리가 장군을 특별히 추모하는 것은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적인 철수를 주장했던 미국 조야의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독 장군만이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여 우리의 오늘을 가능케 한 그 공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1951년 1월 2일, 미국 정부는 고 월튼 워커 중장을 미국 육군대장으로 추서했다.

< 순천보훈지청 = 허대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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