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담쟁이 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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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소리

소나무와 담쟁이 넝쿨

      < 한 승 하   편 집 장 >

예로부터 소나무는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나타 낸데다, 비바람과 눈보라의 역경 속에서 푸른 모습을 꿋꿋하게 간직한 절개와 의지를 선비 정신에다 비유해 왔다.

반면, 조선조의 선비들은 “담쟁이덩굴이 다른 물체에 빌붙어서 올라가는 것을 지조 없는 소인배와 비교 했다.”는 것이다.

실 예로, 인조 14년(1636) 5월4일 부수찬 김익희가 올린 상소문에 “빼어나기가 송백(松柏)과 같고 깨끗하기가 빙옥(氷玉)과 같은 자는 반드시 군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담쟁이 넝쿨이나 등나무 같이 교결하기가 뱀이나 지렁이와 같이 하는 자는 반드시 소인배일 것이다.”고 했다.

하여, 옛 선비들은 “담쟁이덩굴은 등나무와 함께 가장 멸시하던 소인배에다 비유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난 지방화 시대를 상기해보면, 자치단체장이 바퀼 때마다, 담쟁이 넝쿨처럼, 새로운 시정에 빌붙어 살아가는 소인배 공직자를 간혹 볼 수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전남 순천시의 경우, 국장급을 비롯해 과장. 계장급 등 일부 간부 공직자들이 새로운 시장이 들어 설 때마다, 담쟁이 같이 빌붙어 초고속 승진을 한 일부 간부 공직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청내 직원들은 물론 시민들은 이미 짐작하고 알고 있는 듯한데, 정작 자기 자신들만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여론이다.

게다가 이들은 서민들의 쓰라린 고초는 멀리한 채, 리더의 눈치만 살피다 리더가 “소통‘이란 단어만 나와도, 소통. 소통. 소통. 구호만 무성한 과잉충성에 시정은 썩어만 가고 있다는 시민들의 지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리더의 총애를 등에 업고 청내 직원들은 물론, 크고 작은 시정에 지나친 간섭과 아집으로 민심이 이슬비에 옷 젖듯, 떠나고 있다는 시민들의 여론이다.

반면에, 이들 입장에서야 “담쟁이 넝쿨처럼 빌붙어 살아가던 아니, 소나무의 선비 정신을 어어 가던, 능력 것 살아가는데 웬 말이냐.”고 반문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시민들이나 간부 공무원 이든 간에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를 지키지 못하면, 언젠가는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망각하고 살아가는 본인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는 담쟁이 넝쿨과 등나무 처럼, 빌붙는 추잡한 공직생활보다는 비바람과 눈보라의 역경 속에서 푸른 모습을 꿋꿋하게 간직한 절개와 의지를 지킨 소나무와 같은 참 공직자 정신을 지켜야 할 것이다.

아무튼 소인배와 같이 빌붙어 살아가는 공직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순천 사회는 썩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 한 승 하 편 집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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