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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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여성

길 위에서

나희덕 시인

  • 기자
  • 등록 2016.01.17 20:11
  • 조회수 3,056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닳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 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나희덕 시인의 약력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 『야생 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시론집『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반통의 물』 등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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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나도 누군가의 길을 막으려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도 길을 잃고 헤맸던 시절이 있고 지금도 그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가려는 길 앞에서 누군가는 나의 길을 막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나이가 훌쩍 키워져서야 알게 되었다. 엊그제의 일이다. 같이 나눈 술좌석에서 내가 제시한 일을 하려고 했는데 그 친구는 자기가 그 일을 하려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고 했다. 바로 이것이 나의 발목을 잡는구나, 생각했다. 이런 것들이 나의 길을 막으려는 자이다. 느끼는 순간 나도 누군가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못한 지난 시절을 생각해 냈다.

  이렇게 나에게 간절한 일들 앞에 또 누군가는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다. 그럴수록 벗어나려는 안간힘이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시인도 그런 일들을 당하면서 세상의 비정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리.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길 위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것이다. 올바르게 가라고 아무리 붙들어봐야 그는 그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을 찾으러 발버둥을 칠 것을 안다. 한 번 당했다는 생각에 다시는 그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누구에게 해를 끼쳤는지 돌이켜볼 일이다. 누구에게도 가는 길을 막지 말라. 기꺼이 응원하고 도와주라. 그러면 그는 당신을 믿어줄 것이니.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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