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오가리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 · 여성

호박오가리

복효근 시인

  • 기자
  • 등록 2016.01.14 13:57
  • 조회수 1,362


여든일곱 그러니까 작년에
어머니가 삐져 말려주신 호박고지
비닐봉지에 넣어 매달아놨더니
벌레가 반 넘어 먹었다
벌레똥 수북하고
나방이 벌써 분분하다
벌레가 남긴 그것을
물에 불려 조물조물 낱낱이 씻어
들깻물 밭쳐 다진 마늘 넣고
짜글짜글 조렸다
꼬소름하고 들큰하고 보드라운 이것을
맛있게 먹고
어머니께도 갖다드리자
그러면 벌레랑 나눠먹은 것도 칭찬하시며
안 버리고 먹었다고 대견해하시며
내년에도 또 호박고지 만들어주시려
안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복효근 시인의 약력

1962년 전북 남원출생
1991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마늘촛불』『따뜻한 외면』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등.

-------------------------------------------
< 감상 >

  어머니 손길이 가는 호박오가리, 호박고지를 다음 해에 다시 먹어야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깃든 시인은 다름 아닌 어머니를 보내기 싫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스트레스를 적게 받은 사람이 오래 산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니 기쁘게 해드리는 것도 자식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후레자식들이 많은 이 사회에 이렇게 따뜻한 시인이 있는가. 우리는 종종 부모님에게 전화를 건다들지 또는 찾아뵙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본가에 가면 바리바리 싸주는 손길에 늘 맛있게 먹었다는 한 마디에 어머니는 좋아하신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이 시큰거린다. 세상에 모든 후레자식들아! 집에 전화안부라도 물어줄 일이다.
<-서문기 시인->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