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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기사입력 2012.06.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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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오는 6월 25일은, 지금으로부터 62년 전 이 날 새벽 4시 북한의 故 김일성이 남한을 적화 통일시키기 위해 탱크 등으로 무장하고 대대적인 남침을 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국군이 창설된 지 얼마되지 않았던 남한은 전세(戰勢)가 불리하여 사흘만에 북한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두달 여 만에 대구, 창녕지역 낙동강까지 밀리게 되었다.

    낙동강지역에서는 남북한간에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할 수 있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전열을 정비하여 통일을 위한 북진을 계속하여 마침내 압록강지역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북한의 지원요청으로 인한 중공군의 개입과 그들의 인해전술로 인해 1951년 1월 4일 눈물을 머금은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등 16개국에서 6?25전쟁에 참전하였으며, 덴마크 등 5개국이 의료지원단을 파견하였다.

    우리는 국가의 위기시 희생을 한 미국을 비롯한 동맹 국가들의 원조와 참전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된다.

    6?25전쟁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물론 당시 관련 국가들은 수많은 사상자의 발생과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다.

    군인, 경찰 등으로 참전하여 상이를 입고, 6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고통을 받고 있는 국가유공자가 있음은 당시 전쟁의 참혹함을 새삼 알게 해준다.

    6?25전쟁은 3년 1개월 동안 계속되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이 땅의 총성은 잠시 멎게 되었다.

    현재 155마일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이 대처하고 있으며, 북한은 수시로 남한에 무력도발을 감행해 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연평도 해전과 천암함 폭침 등 우리의 생떼같은 국군장병들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현재의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국가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21개 지원국의 각종 원조, 그리고 선공후사의 정신을 실천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공헌과 희생이 계셨기 때문이다.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에티오피아 같은 참전지원국에 대한 적극적인 원조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미국을 비롯한 우리 우방국가와 긴밀한 동맹관계를 지속해야 하며,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국가유공자와 그 유가족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 다시는 이 땅에 6?25전쟁 같은 민족상잔의 비극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순천보훈지청 취업팀장 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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